
필름 한 롤을 도시 한 바퀴에 다 쓰기로 했습니다. 서른여섯 장. 찍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으니 셔터를 누르기까지 한참이 걸렸어요. 그 기다림이 이번 호에 오려 붙인 이야기입니다.
규칙 세 개
- 같은 장면은 한 번만 찍는다
- 사람 얼굴은 정면으로 찍지 않는다
- 열 장을 찍기 전에는 필름 카운터를 보지 않는다
걸으면서 알게 된 것
사진은 많이 찍을수록 느는 줄 알았는데, 이번에는 반대였습니다. 한 장을 찍으려고 십 분을 서 있었더니 그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어요. 골목 끝의 빨래, 담장 위의 고양이, 간판의 낡은 글자 같은 것들이요.

현상소에서
롤을 맡기고 이틀을 기다렸습니다. 돌려받은 필름은 한 장씩 빛에 비춰 보았어요. 흐려진 사진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아깝지 않았습니다. 그날 제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기억이 났거든요.
다음 롤
- 흑백으로 한 번 더 찍어 볼 것
- 같은 거리를 비 오는 날 다시 걸어 볼 것
- 현상은 서둘러 찾지 않을 것
필름 한 롤에 도시 한 바퀴. 오려 붙이면 한 면이 됩니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