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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름 노트

필름 한 롤로 도시 한 바퀴

서른여섯 장은 생각보다 금방 끝나고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. 한 롤을 하루에 쓰는 규칙과, 현상 뒤에야 알게 된 것들.

1분이면 넘겨요오린 사람 세아

라이트테이블 위의 필름을 확대경으로 살피는 손
목차
  1. 규칙 세 개
  2. 걸으면서 알게 된 것
  3. 현상소에서
  4. 다음 롤

필름 한 롤을 도시 한 바퀴에 다 쓰기로 했습니다. 서른여섯 장. 찍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으니 셔터를 누르기까지 한참이 걸렸어요. 그 기다림이 이번 호에 오려 붙인 이야기입니다.

규칙 세 개

  1. 같은 장면은 한 번만 찍는다
  2. 사람 얼굴은 정면으로 찍지 않는다
  3. 열 장을 찍기 전에는 필름 카운터를 보지 않는다

걸으면서 알게 된 것

사진은 많이 찍을수록 느는 줄 알았는데, 이번에는 반대였습니다. 한 장을 찍으려고 십 분을 서 있었더니 그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어요. 골목 끝의 빨래, 담장 위의 고양이, 간판의 낡은 글자 같은 것들이요.

풀숲 사이에 서 있는 낡은 전차의 흑백 사진
현상 후 가장 오래 본 컷. 흐린 컷은 일곱 장, 마음에 든 컷은 아홉 장이었다.

현상소에서

롤을 맡기고 이틀을 기다렸습니다. 돌려받은 필름은 한 장씩 빛에 비춰 보았어요. 흐려진 사진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아깝지 않았습니다. 그날 제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기억이 났거든요.

다음 롤

  • 흑백으로 한 번 더 찍어 볼 것
  • 같은 거리를 비 오는 날 다시 걸어 볼 것
  • 현상은 서둘러 찾지 않을 것

필름 한 롤에 도시 한 바퀴. 오려 붙이면 한 면이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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